오랫만에 읽은 소설집이다. 단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호흡이 짧은 문장이나 단편들에도 가끔은 관심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가끔 만난 단편들이 마음에 들면 금상첨화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히스토리가 독특하다. 저자 프리츠 오르트만은 독일 내에서도 그렇게 알려진 작가가 아니고 발표한 작품 수도 적어서 저자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금은 철학박사이자 철학교사인 안광복님이 1992년 대학 시절, 중급독문강독 시간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마침 교생실습으로 인해 수업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신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일부를 번역해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번역하다보니 작품에 완전히 빠져 전체를 번역하여 제출하였는데, 이 과제 복사본이 대학가를 돌면서 이 이야기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안광복님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최초 소개자로 알려져 있다고. 책 말미에 안광복님의 이런 스토리가 담긴 해설이 곁들여 있다. 이번에 읽은 이 소설집은 안광복님이 번역한 것은 아니고 이 작품을 "내 청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문학적 사건"으로 여긴 안병률님의 번역인데, 원래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단독 작품이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 작가의 7편의 다른 단편들이 모인 소설집 럼주차 를 내면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를 함께 묶어서 낸 것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일까? 곰스크라는 장소는 실제하는 장소가 아닌 모든 이들이 꿈꾸는 장소, 안착하고 싶어하는 장소, 유토피아 같은 장소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봤다는 사람이 없다. 작품 속에서도 곰스크에서 출발하여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기차에 탄 사람들과의 대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버지에게 곰스크라는 장소에 대해 듣고 자란 주인공은 평생 곰스크로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드디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1등석에 탑승한 주인공. 하지만 아내는 낯선 곳,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곰스크라는 곳에 대한 불안감으로 편하지 않다. 기차가 중간에 잠깐 작은 시골마을에 두시간 동안 정차하는데, 아내는 그 땅을 밟자 마자 활기를 되찾고 사랑스런 아내와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만다. 잠시 정차했던 마을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임시로 거주하던 주인공과 아내는 곰스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여전히 곰스크로 향하는 날을 꿈꾸며 돈을 모으고 아내는 곰스크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저 현재가 좋을 뿐이다. 아이가 하나, 둘 생길때까지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고 주인공은 여전히 곰스크를 꿈꾼다. 그렇다면 곰스크로 가지 못한 주인공은 불행한 것일까? 역시 젊은 시절, 곰스크로 가고자 했으나 결국 가지 못하고 마을에서 교사를 하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교사 자리를 주인공에게 물려준 선생의 말에서 우리는 그 답을 추측해본다."그대가 원한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소설집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 외에도 7편의 단편이 더 실려있다. 읽다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는 어떠한 극적인 갈등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오늘날 극도로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이라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젊은 날에는 맵고 짠 음식들을 선호하다가 나이가 들면 삼삼하고 자연의 맛이 깃든 음식을 찾는 것처럼 철학적 깊은 울림이 있는 잔잔한 내용이 마음에 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졌으면서도 북서쪽으로 가는 같은 배 ( 배는 북서쪽으로 참조)를 타고 있는 승객들이 아니던가. 따끈한 럼주차를 달에게 건배하는 보이 엡센( 럼주차 참조)처럼 때로는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는 태도가 부럽다.
드라마와 연극으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던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를 소설 원작으로 만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사내는 곰스크로 향하던 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곰스크로의 꿈을 접고 만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인생은 그곳에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는 역설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 「곰스크로 가는 기차」 외에도 오르트만의 단편 7편이 함께 실려 있다. 목적지에 가닿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탐욕을 짚어낸 소설 「배는 북서쪽으로」, 생의 의미를 옹호하는 화가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평생 부끄럽게 간직하는 아들의 모습을 그린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와 「양귀비」 등 돈과 권력의 반대편에는 항상 살아있는 인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배는 북서쪽으로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붉은 부표 저편에
두 시절의 만남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
해설 실패한 인생은 없다 _안광복
옮긴이의 말 스무살의 골방에서 세상으로 _안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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