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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1988년, 대학 문학회, 굉장히 똘똘해 보일뿐더러 정말 똘똘하기까지 했던 동기 여학생은 이제 남편과 함께 설계 사무소를 꾸려 가면서 어여쁜 두 딸의 엄마 노릇까지 하는 중이다. 이 친구가 첫 번째 딸을 임신했을 당시 적당히 부른 배를 이 여자 동기와 함께 중구청을 갔던 기억이 난다. 친동기간이라도 된 듯 조금은 힘들어 보이고 조금은 어른스러워져버린 친구를 옆에 두고 형언하기 힘든 감상에 휩싸였었던가.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함께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강의를 나가 학생을 가르치고 자신의 글을 쓰고 자신과 남편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기까지 하는 친구를 몇 년에 한 번씩 밖에는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이 연이어서 이번에 또 몇 년만에 연락이 되어 압구정에 위치한 친구의 사무실을 방문했더니 그 동안 낸 몇 권의 책 중 하나라며 이 책을 건넨다. 남편과 함께 글을 쓰고 (어떤 것이 친구의 글이고 어떤 것이 형님의 글인지 분간하기 힘이 든다) 사진가의 도움을 받아 구성한 책은, 그러니까 집짓기를 의뢰한 집주인과 이들의 의뢰를 받고 멋스러운 집을 만들어낸 건축가를 이들 부부가 인터뷰하고, 여기에 집에 대한 이들 부부의 평소의 생각을 간간이 집어 넣어 만든 편안한 읽을거리로 채워져 있다. “... 우리는 지금 삶을 위한 집을 구하고 있는 것인지, 집을 위한 삶을 구하는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집은 거주가 아니라 소유의 대상이고, 사는 자의 지위를 상징하는 가장 비싸고 가장 거대한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집에 대하여 이코노믹하고 획일화된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향하는 부드러운 핀잔 또한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평수를 늘려가며 자신의 물적 자산의 성장에 연연하거나, 자신의 현재나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도구로서 어색한 장식의 세례를 퍼부은 집을 소유한 우리들을 향하여 집의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은근히 전달한다. 책에는 모두 열한 채의 집이 소개되고 있다. 때로는 서울의 한 켠 좁은 땅위에 세워진 집이기도 하고, 산 아래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집이기도 한 책 속의 집들은 하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살을 섞고 있는 듯하다. 집주인이 품고 있는 사연은 건축가를 만나면서 풍성해지고 다시 그 집주인이 만들어진 집에 들어서는 순간 간이 잘 밴 일상이 되어간다. 그렇게 책은 보다 큰 집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무관심하고 또 문외한이기도 한 독자인 나에게 어느 순간 집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어준다. 나의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인생의 어느 지점에선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된 집에서의 삶이라는 도락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게 되고, 그때까지의 모든 삶이 누락되지 않고 촘촘히 배어들어 있을 나의 집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현장에 책을 선물한 친구가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곳에 빈 강의실의 고즈넉한 책상에 앉아 밑줄 빡빡하게 그은 맑스 레닌을 앞에 두고 목청 돋우었던 시간도, 대학로 어느 찻집에서 사소하지만 버리기 힘들었던 청춘을 커피 한 잔으로 싱겁게 회상하던 시간도 스며들어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건축가인 그녀와 나의 <행복한 만남>이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젊은 부부 건축가가 찾아낸 흥미로운 집 구경 책. 좋은 집주인과 좋은 건축가가 행복하게 만나면 좋은 집을 만든다는 저자의 소신이 맛깔스러운 필체로 펼쳐지며 집 한 채 지어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의 꿈을 키워준다.

몸이 불편한 딸을 위해 집을 지은 작가, 미술평론가, 웹 아티스트, 시사평론가, 등산가이자 카페 주인인 부부 등 집에 대한 꿈이 크디큰 11채의 집주인과 또 그만큼 상상력 풍부하고 장인 정신이 투철한 건축가가 만나서 집을 지은 이야기 사이사이에 사진가 김재경이 포착한 장면과 함께 저자의 개성있는 집 스케치가 곁들여진다.


프롤로그 - 집은 만남이다

01 17평땅 위에 아주 커다란 집을 만들다
예술가인 집주인과,건축가 최욱의

02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베이스캠프에서 산다
집주인 다니엘과 젬마, 건축가 김광수의

03 인생의 변곡점에서 지은 집에 다리를 놓다
집주인 김민수, 건축가 김헌의

04 책들이 사람과 함께 집의 주인이 되었다
집주인 박종일, 건축가 서혜림의

05 집주인 이름을 따서 집 이름을 짓다
집주인 이왕국, 건축가 문훈의

06 너럭바위를 품은 집에서 풍경을 끌어안다
집주인 황경숙, 건축가 김개천의

07 다가구주택에 임대 든 사람이 건축가에게 편지를 쓰다
집주인 이혜경, 건축가 김인철의

08 이상촌을 꿈꾸다가 아주 조용한 집에 산다
집주인 염재호, 건축가 이종호의 가평

09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집에서 강이가 산다
집주인 송진헌, 건축가 함성호의

10 꽃과 나무가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공간에 산다
집주인 임지수, 건축가 권문성의

11 그 적막한 풍경 뒤로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집주인 김민호,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에필로그 - 집주인과 건축가가 행복하게 만난 집에서